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피의 일요일 사건 (문단 편집) == 성당 대신 황궁으로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s3.amazonaws.com/pnp368919.jpg|width=100%]]}}} || [[1905년]] 1월 22일[* [[그레고리력]] 기준. 당시 러시아에서 사용하던 [[율리우스력]]으로는 1월 9일이었다.] 노동자들은 황제 [[니콜라이 2세]]에게 급료를 올려 달라고 청원할 생각으로 [[러시아 제국]]의 국가를 부르면서 눈길을 걸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에르미타주 박물관|겨울 궁전]]으로 향했다. 청원서를 가지고 행진하는 대열은 점점 불어나 급기야는 30만 명[* 당시 대열을 이끈 게오르기 가폰 신부의 주장. 실제로는 대략 5만에서 6만 정도로 추정된다.]을 넘어섰는데 행렬 앞에서 [[이콘]]과 황제의 초상을 들고 나갔다. 사람들은 [[노동자 마르세예즈]]와 같은 민중가요를 부르며 행진했다. 그리고 이 행렬을 최선두에서 이끌었던 것은 [[러시아 정교회]]의 게오르기 가폰 신부였다. 훗날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는 공안감찰국, 즉 '''[[비밀경찰]]'''의 [[스파이]]였다. 분노한 민심을 조금이라도 덜 위협적인 상태로 돌려 놓는 것이 그의 임무였는데 가폰 스스로도 과격한 [[혁명]]보다는 이런 완화된 움직임이 [[노동자]]들에게 더 도움이 된다고 믿고 첩자가 되었다. 노동자의 진정한 이익과 당국의 선한 의지를 조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사제라는 직위와 고결한 이상을 내세워서 노동자들의 민심을 얻어 그들의 지도자가 되었다. 어떻게 보면 폭동을 시위로 바꿔놓았으니 그가 임무를 완전히 저버린 것도 아닌 셈. 그러던 중 푸틸로프 기관차 공장에서 노동자 4명이 노조 회원이라는 이유로 부당해고를 당했다. 이에 대해 가폰 신부가 설립한 노동자 단체는 회사 측과 정부에 노동자들을 즉각 복직시키고 해고를 명령한 관리자를 해고하라고 요구했지만 회사 측은 노동자 단체의 요구를 무시했다. [[1905년]] [[1월 15일]] 노동자 600명이 푸틸로프 공장 앞에 모여 8시간 노동[* 당시 러시아 제국 노동법상 12 ~15세의 노동만 최대 8시간으로 제한되었다.]과 최저임금 보장, 노동자 조직 인정과 더불어 자신들을 협상 대상으로 받아들일 것 등을 요구했지만 사측에서는 이마저도 무시했다. 이튿날인 [[1월 16일]]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총파업을 위한 파업대책위가 구성되었고 푸틸로프사의 노동자 1만 2천 명이 파업에 나섰다. 17일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지역의 대공장 노동자들이 파업에 동참하였고 20일과 21일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전역에서 총파업이 실행되었다. 노동자 15만 명이 총파업에 동참하여 교통, 우편, 신문 등이 모두 멈추자 도시 전체가 마비되었다.[* [[http://news.imaeil.com/Travel/2017102800121374415|#]][[http://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41152.html|#]]] 노동자들의 분노가 끓어올라 [[폭동]]이 일어날 듯하자 가폰 신부는 이들을 다독여 황제에게 제출할 청원서를 들고 행진하도록 이끌었다.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그가 행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었던 것이다. 이들의 요구는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 비밀투표가 보장되는 평등한 선거권과 이를 통한 제헌의회의 설립 * 1일 8시간 노동의 준수. * 하루 최저임금 1루블 지급. * 의료혜택 제공. 가폰은 행진을 계획한 뒤 내무장관에게 청원서 사본을 보내 사흘 뒤에 행진이 있을 것을 예고했다. 그날 차르가 민중 앞에서 요구를 들어주는 척만이라도 해도 러시아 민중들의 불만이 많이 완화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동아시아]]만 해도 민중들의 삶이 많이 힘들어지면 왕이 거친 삼베옷을 입고 반찬가지 수도 줄이고 서양에서도 왕이 불만을 품은 백성들을 일단은 쇼맨쉽으로 달래 주는 경우가 많았던 만큼 가폰도 온화한 성격을 가진 [[니콜라이 2세]]가 민중들을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으나...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